장애 학생을 위한 음악교육은 그 역사가 길지 않고 오늘날의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여 모든 학생에게 맞는 학교 음악교육을 만들기 위해서는 음악교육의 움직임을 되짚어보고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장에서는 장애 학생을 위한 음악교육의 역사적 배경과 근원, 음악교육의 변화에 대해 서양과 한국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서양
고대와 중세의 경우 장애인은 종교적 자선사업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은 사회 외적 존재, 교육 불가능의 대상으로 취급되며 학대와 유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근세 초기에 접어들면서 선구적인 특수교육자들을 중심으로 장애 학생 교육과 교육방법들이 시도되어 특수교육방법의 발전에 기초를 닦게 되었는데, 특수교육에서 교육의 수단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이전에는 장애 학생의 음악교육에 관하여 뚜렷한 연구가 없었고 특별한 교육과 치료를 제공하는 노력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프랑스의 의사인 이타르(j. M. G. Itard)에 의해 장애 학생에 대한 감각교육이 시행되었고 이것은 후에 음악교육을 적용하는 데 있어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서양 특수음악교육의 역사는 우선 음악이라는 장르를 특수교육에 활용할 수 있도록 시도한 교육자나 정신의학자들의 역량을 통해 살펴보아야 하는데 흔히 이타르에서 몬테소리에 이르는 이들은 다양한 방법, 특히 감각훈련이라는 새로운 교육개념과 교육환경을 개척함으로 말미암아 음악을 활용한 특수교육의 장을 연 공헌자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타르는 1799년 아베롱(Averyon)의 야생소년 빅터(Victor)에게 특별한 교수법을 통하여 감각훈련을 시행하였습니다. 이 작업은 언어훈련 영역에서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감각훈련 영역과 사회성 훈련 영역에서 다소의 성과를 거두며 지적장애 학생도 교육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에스키롤(J. Esquirol)은 정신병과 지적장애를 구별하여, 지적장애 학생은 음악을 배울 수 있는 능력과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타르의 스승인 피넬(Philippe Pinel)의 진단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면서, 정신질환자를 보다 인도적으로 치료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당시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 방법과 대조해볼 때, 인도적으로 치료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임과 동시에 이타르가 시행했던 감각적 교육방법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세갱(E. Seguin)은 정신질환에 관심이 많았던 의사로서 페리에(Perier)의 사상과 이타르의 실험, 에스키롤의 접근법을 종합한 독특한 교수법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교수법은 수동적인 것으로부터 능동적인 것을,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지각적인 것으로, 조잡한 것으로부터 세련된 것으로, 관심으로부터 모방으로, 구조적인 활동으로부터 창조적인 것으로 옮겨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1839년에 지적장애 학생을 위한 학교를 세우면서 보편적인 치료법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치료법은 이전까지 지적장애의 원인을 뇌의 이상이라고 본 것을 출생 전, 출산 도중, 출산 이후에서도 그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획기적인 전제를 세우며 지적장애에 대한 새로운 교육접근을 시도했습니다. 세갱은 이타르와 에스키롤의 교수법을 연구하면서 지적장애 학생을 위한 근대적인 교육방법을 개척한 사람이며 후에 달크로즈나 몬테소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달크로즈(J. Dalcroze)는 자신의 스승인 페스탈로치의 교육철학, 즉 학생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지적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에 음악을 사용하였습니다. 음악이라는 장르가 교육에 미치는 효과적인 역량들을 확인하게 해준 달크로즈의 노력은 1922년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들을 가르치는 것에 관심을 두고 교육으로서의 리드믹스를 이용하였습니다. 달크로즈는 음악의 근원을 리듬으로 보고 모든 학생이 갖고 있는 리듬감각을 조기교육을 통하여 발전시키며 음악을 듣고 학생 스스로 표현해봄으로써 해방감을 맛보게 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효과적인 음악교육을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듣고 느끼며 음악에 맞춰 신체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하고, 음악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로 들음으로써 음악을 느끼고 표현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세 가지 교수법, 유리드믹스(리듬교수법), 솔페주(계이름 부르기), 즉흥연주를 개발했습니다. 달크로즈는 단계적 수업방법보다 즉흥적 수업을 강조하였으며 이것은 지적장애아의 음악교육 발전에 공헌하였습니다.
몬테소리(M. Montessori)는 이탈리아의 의사로서 1921년에 출판된 Montessori Methodo라는 책을 통하여 그의 교육원리를 발표함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의 교육원리는 스스로 배워 가는 교육방법과 학생의 인지발달을 위한 감각교육에 중점을 둡니다. 그는 학생에게 미세한 음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고요함을 익히는 것에서부터 음악교육을 시행하였으며, 그의 리듬운동은 달크로즈의 신체 표현과 유사합니다. 몬테소리는 조기교육에서 감각과 근육의 훈련을 중요시했고, 또 가정에서 하는 실제적인 생활활동을 강조하였습니다. 몬테소리 교육은 학생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가능성과 자발성을 발견하도록 준비된 환경과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여 음악을 통해 전인적 발달과 성장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학자들이 교육과 치료적 도구로서 음악의 의미를 파악했으며, 아우이(Valentin Hauy)와 캠벨(F. J. Campbell)은 실제로 학교에서 음악을 적용하였습니다. 아우이는 파리 맹학교를 설립하고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이론을 저술하여 음악을 가르쳐야 할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캠벨은 본인이 시각장애인으로서 테네시대학에서 음악공부를 하며 음악교사로 일하게 되었고, 1872년에 학생 2명으로 시작한 그 학교는 후에 왕립사범대학과 음악대학(Royal Normal College and Academy of Music)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왕립사범대학과 음악대학은 장애 학생의 졸업생 80~90%가 자립생활을 하였고 대다수가 음악가, 교사, 피아노 조율과 수선훈련을 받은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의 시각장애학교들이 직업 준비교육에 중점을 두게 하는 큰 성과였고, 특히 음악교육을 통한 직업 준비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2. 한국
시각장애인의 경우 일찍부터 점복자로서 혹은 주술자로서의 직책을 가지기도 했는데, 고려 초부터 국가에서는 복업을 과거제도에 포함시켜 복인을 선발하였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자립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였고, 복업이 제도화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복업이 명과학으로 개칭되면서 잡학교육이 있었고, 시각장애인 중 일부는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 관련 직업을 가졌습니다. 이를 관현맹인(管絃盲人), 관현맹 또는 고악이라고 하였습니다. 관현맹인은 조선시대 각종 행사의 음악과 음악교육, 악공, 악생의 관리를 담당했던 장악원에 소속된 체아직으로, 조선시대 여자들만 있는 궁중 내연(內宴)에서 관현합주(管絃合奏)나 가무반주(歌舞伴奏)를 맡았습니다.
세종 초에 18명을 뽑아 음악교육기관인 관습도감에 소속시켜 교육을 받게 하였는데 주로 당악과 향악을 연주하였고 이들이 사용한 악기는 거문고, 당비파, 북, 장구, 해금, 태평소, 피리 등이었습니다. 1493년(성종 24년)에 편찬된 음악이론서 [악학궤범]과 영조 20년의 [진연의궤]에 관현맹인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세종시대 이반, 성종시대 김복산 등 유명한 시각장애인 음악가가 많았는데 김복산은 가야금 솜씨가 당대 일인자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관현맹인 제도는 1894년에 철폐되었고, 1896년에는 정진소학교에서 시각장애아의 통합교육이 시행되면서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들이 서양의 교육방법을 통해 이 땅에서 처음으로 음악을 교육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조선시대에도 장애인들을 위한 음악교육을 실시하였고 음악을 이용하여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여 음악적 재능을 인정해 관직에 나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후 대한제국 개화기에는 서구 문명 수용 와중에 선교사들에 의해서 서양 음악이 도입되고 특수교육이 성립되기 시작하면서 음악교육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한국 특수교육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1894년 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여사의 시각장애 소녀를 위한 점자교육 이래 맹학교와 농학교가 설치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조선총독부에 의해 1913년 설치된 제생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박두성은 1928년 맹아동을 위한 한글점자를 완성하여 한국인들의 특수교육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음악교육은 민족선각자들이 세운 학교에서 국권 회복을 위해 시행한 음악교과 내용과 관립 교육기관에서 이루어졌던 주입식의 음악교과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어 학교 음악교육 본래의 목적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후 광복과 한국전쟁 등의 정치적 상황들로 인하여 예능교과는 더욱 소홀히 다루어졌습니다.
다양한 음악 활동은 장애 학생에게도 장애 정도에 따라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거나 낮은 성취도를 보일 수는 있으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다양한 능력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1955년부터 시행되어 수차례 개정을 거쳐 지금의 교육과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특수교육과정은 특수교육 대상자의 특성에 맞는 교육과정과 방법 등이 제시되면서, 장애 학생의 음악교육 또한 기존의 전형적인 교육방법과 인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성취학습을 지향하며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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